(1. 오류부문)
유관순열사의 시신은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제하에서 일제의 군용기지로 전환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되는 과정에서 없어지게 되었다.
(1. 정당문구)
유관순 열사는 1920년 10월 12일에 옥사하여 10월 14일 일제의 삼엄한 경비 속에 이태원공동묘지에 묘비나 표석도 없이 매장되었다가, (1937년 6월 9일의『동아일보』기사에 따르면)
일제는 이태원을 군용기지 및 주택지로 만들기 위해 1935년 ~ 1936년 4월 8일까지 미아리와 망우리로 이장 완료하였다.
유연고 묘는 4,778기에 불과하고 ,
나머지 28,000여기 무연고묘는 그 전부를 망우리 공동묘지에 화장 및 합장하였고,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를 세웠다.
또한, 이곳에 유관순열사의 시신이 계실 것으로 추측되어 2018.9월에는 유관순열사 분묘 합장표지비가 세워졌다.
============== 근거 자료=======================
서울 부근의 공동묘지(共同墓地) 위치(位置)
숭인면(崇仁面) 미아리(彌阿里) 공동묘지(현 도봉구 미아리 1914년 설치)
숭인면(崇仁面) 이문동(里門洞) 공동묘지(현 동대문구 이문동 1914년 설치)
한지면(漢芝面) 수철리(水鐵里) 공동묘지(현 성동구 옥수동 1914년 설치)
은평면(恩平面) 신사리(新寺里) 공동묘지(현 은평구 신사동 1914년 설치)
한지면(漢芝面) 이태원리(梨泰院里) 공동묘지(현 용산구 이태원동 1914년 설치)
이상은 모두 1914년에 설치되었고
수용한계로 1933년에 구리면(九里面) 망우리(忘憂里) 공동묘지(현 중랑구 망우리)를 설치하고, 유관순열사의 시신은 무연고 묘로 처리되어 28,000여기 속에 포함되어 1936년에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장하였다.
앞면 글씨 :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
뒷면 글씨 : 소화 11년(1936년) 12월 경성부 (이태원공동뵤지에서 망우리공동묘지로 이전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