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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애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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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인아
구분
제목 독립기념관 특별기획전,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외치다!

방학이 시작되고 아이와 가볼만한 곳이 고민이시라면 천안 독립기념관을 추천합니다. 독립기념관하면 독립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해 둔 곳으로 한 번쯤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텐데요. 이번 방학에는 독립기념관 제7관 특별기획전시실만 들렸다 오셔도 뜻깊은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8월 20일까지 열리는 '한국 독립운동과 국제회의'입니다. 총 3부로 꾸며진 전시는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있어 우리가 독립을 하는 과정을 머리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1부에서는 국제평화모색을 위한 국제회의에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다양한 나라와 국교를 맺고, 외교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대한 정책을 펼치고, 1905년 일본 이토의 주도하에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 5명의 대신이 찬성해 을사늑약이 체결되는데, 이를 을사오적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당시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905년 7월 미국과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체결,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을 맺고, 이어 9월에는 미국의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게 됩니다. 주권을 빼앗긴 고종은 황실 고문인 헐버트(Hulburt, H. B.)를 특별사절로 임명해 ‘짐은 총칼의 위협과 강요 아래 최근 양국 사이에 체결된 이른바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다. 짐은 이에 동의한 적도 없고 금후에도 결코 아니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알리도록 했습니다. 전시물에는 헐버트 임명장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조선의 통치권은 일제로 넘어가고 있고, 그 절박함에 고종은 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기 위해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보내게 됩니다. 전시장에는 이준이 기자들을 상대로 연설한 국제협회 건물과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비넨호프 왕궁 기사 홀 사진도 직접 볼 수 있어 시간 여행을 제대로 하는 느낌입니다. 또, 이 앞에서 이위종을 인터뷰했던 내용을 직접 보면서 헤이그 특사의 활동에서 무엇을 국제회의에 알리려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부가 끝나갈 때 쯤 '나만의 독립운동 문서' 만들기를 위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책자 일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 장씩 모아서 전시 마지막 공간에 만들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저도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들이 전하고자 했던 고종의 친서를 한 장 들고 2부로 넘어갑니다.



2부에서는 우리가 자주 들어왔던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전후 처리 문제와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강화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때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지만, 이미 을사늑약을 체결하면서 식민지인 한국에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을사늑약이 강제적이었고, 한국은 주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알리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있는 신한청년당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을 해 그 부당성을 13개 조로 작성해 제출합니다.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1918년 일본 유학생을 주축으로 2.8 독립선언이 일어나고, 독립선언서가 국내로 들어오면서 3.1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이 되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외교부장에 김규식이 임명됩니다. 그리고 이관용, 황기환, 조소앙, 김탕, 여운홍 등이 파리에 도착하면서 한국 대표단이 모여 각국의 대표와 프랑스 유력 인사에게 한국의 처지를 설명하고 지지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까지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세력 재편을 위한 워싱턴회의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인 이승만을 주축으로 서재필, 정한경, 돌프 등 대표단을 구성해 외교 활동을 펼쳤으며, 국내에서는 372명의 이름으로 청원서를 써냈습니다. 미주 한인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한국 대표단을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2부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영 박물관에서 찍힌 대표단의 영상도 만날 수 있습니다.




3부로 넘어가면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일어난 중일전쟁이 나오고, 이때 한국이 일본의 전쟁 물자를 대주는 병참기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1941년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그 사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윤봉길, 이봉창의 폭탄 투하로 일본과 맞서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은 미국이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면서 끝이 났습니다. 국제연맹은 일본의 중국 동북 침략 실상을 확인하고자 조사단을 파견해 리튼 보고서를 채택했고,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이승만을 대한민국임시정부 '특명전권 수석대표'로 임명했습니다. 제네바에서 한국 독립에 대해 외교 및 선전활동을 펼치면서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 승리로 끝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고, '대덕 선전포고문'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대표단은 회의 참가를 요구하면 전후 한국 독립을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3부 전시를 둘러보며서 억울하고, 비통한 기분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린 늘 국내 3.1운동만을 생각했었는데,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알리기 위해 참가할 수도 없는 국제회의에서 무시 당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에는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현실로 돌아오는 동안 전시장 말미에 모아왔던 문서를 천천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한국독립을 위해 함께 애써 준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에게도 감사함을 느끼며 전시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전시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연도별로 잘 정리가 되어있어 그 시대상을 잘 알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노력으로 독립을 쟁취했는지 감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가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온 날입니다. 당당하게 국제회의에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으며 독립을 쟁취한 날인만큼 아이들 손잡고 꼭 한번 독립기념관 특별기획전시를 보러 오시기 바랍니다.


독립기념관

하절기(3월~10월) : 입장시간 09:30~17:00 / 관람시간 09:30~18:00

동절기(11월~2월) : 입장시간 09:30~16:00 / 관람시간 09:30~17:00

정기 휴관일 :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개관)입니다. 단, 상설전시관 외 야외전시, 쉼터 등은 개방합니다.


‘한국 독립운동과 국제회의 특별기획전’

전시 일정 : 2023. 6. 15. ~ 8. 20

전시장소 : 독립기념관 특별기획전시실 Ⅱ

주요 전시자료 : 워싱턴회의(태평양 회의)에 보내는 호소문 등 60여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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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4-04-24 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