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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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열사 생가(사적 제230호)

유관순열사는 성경 구절을 한번 들으면 줄줄 욀 정도로 머리가 총명하였다.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은 유관순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 시절엔 한글을 반절이라고 했지요. 아무도 관순이에게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그 반절을 혼자 익혀서 성서를 읽더니 외워대지 않겠어요. 재주는 꽤 있었던 것 같애.”

유관순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소재)

매봉산을 사이에 두고 유관순이 태어난 용두리(‘지랭이골'이라 불렀다)와 반대방향에는 탑원리 등재부락이 있다. 열일곱 살에 이 등재부락에 시집온 김원숙은 당시 사내아이처럼 괄괄했던 유관순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17살에 5~6가구밖에 살지 않는 이 마을에 시집을 왔을 때 소녀 관순은 귀밑머리, 황새머리, 조랑머리로 머리를 세 갈래로 땋고 사내처럼 동네를 휘젓고 다녔으니까 5살 되었을 거야.”

김원숙 할머니와 같은 부락에 살며 조부인 최준근으로부터 유관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던 최선재씨에 의하면 유관순은 용두리와 탑원리를 전전하며 여러 차례 이사를 했고, 작은 집에서 어렵게 기거했다고 한다.

현재의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전경

같은 마을에서 자란 먼 조카 유제한은 유관순의 생김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관순은 이마가 넓고, 미간이 윤택하며, 눈이 약간 큰 듯하나 흑백이 분명하고 광채가 유난히 빛나며, 코가 뚜렷하고, 아래 위가 고르고 튼튼한 체격을 가졌다.”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의 며느리인 김정애씨는 유관순의 이화학당 재학시절 찍은 사진을 보며 유관순의 생김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화학당 재학시절의 유관순(사진 뒷줄에서 맨 오른쪽)

“저 얼굴처럼 우럭부럭 생기지는 않았다고들 말해요, 얼굴이 희고 복스럽고...... 어깨동무하고 찍었기 때문에 으쓱 어깨가 올라가 찍혔어요. 다른 학생들은 서로 오른쪽 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데 유열사는 키가 커서 오른쪽 사촌언니 유예도와 어깨동무를 하듯 팔을 올려 놓고 찍었어요. 키가 컸던 거지요.”

실제로 유관순열사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을때 기록했던 수형자 기록표를 보면 유관순열사의 신장은 5자 6치, 즉 11자를 30.3cm로 환산하면 169.7cm이다. 조선총독부 관보 제 3226호(1923년 5월 15일)에 따르면 당시 여학생의 평균키는 4자 98치, 즉 150cm 였다. 유관순열사는 키가 크고 활달하며 남자 못지않은 배포가 있는 소녀였던 것이다.

유관순열사와 같이 이화학당에 다녔던 보각스님

유관순열사와 같은 이화학당을 다니며 5년간 같은 기숙사생활을 했던 보각스님(1904년생,속명 이정수)은 유관순은 지기 싫어하고 고집이 세며 때론 18살의 소녀다운 장난끼 있는 아이였다고 말한다.

이화학당 기숙사는 공부 종을 친다음 자기 전에 기도종을 치면 방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기도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 날은 유관순이 기도하는 날이었는데 유관순은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하는 것을 “명태 이름으로 빕니다.”라고 하였다. 친구들은 모두 배를 잡고 웃었고 이 소리를 듣고 사감선생이 달려와 이 방 학생들에게 품행점수를 낙제점을 주었다고 한다.

유관순은 보각스님 집에서 보내온 명태반찬이 하도 맛있어서 명태생각에 그렇게 기도했다고 하여 친구들이 다시 한번 웃게 만들었다.

유관순열사가 생전에 5촌 당질인 유제경에게 직접 떠 준 뜨개모자

사촌인 유경석과 노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당질인 유제경에게는 손수 뜨개질을 하여 모자를 선물하기도 했으며, 학교에서는 어려운 청소를 도맡아 했었다고 한다.

이같이 유관순은 또래 소녀들처럼 장난 잘치고 웃음 많고 뜨개질을 좋아하는 18세 소녀였던 것이다.

일제는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우리의 내정을 간섭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노골적으로 침략의 야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 되었으며 1910년에 이루어진 치욕적인 국권 강탈로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을사늑약문

이는 유관순의 나이 8살 때의 일이다.

꿈 많고 총명하며 장난잘치고 웃음 많던 소녀 유관순은 나라를 빼앗긴 서글픈 시대적 현실속에서 배일의 사상이 싹텄고 부친에게 기울어진 민족의 국권 회복을 위하여 혼과 마음을 불태울 이념과 정신도 공급 받았다.

참고문헌

  • 이정은, 『유관순 불꽃같은 삶, 영원한 빛』,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4
  • 『조선일보』, 1961. 8. 26
  • 『한국일보』, 198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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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7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