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천안시 시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천안시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시민리포터 상세보기

해당 게시물의 작성자와 구분 제목과 내용을 나타냅니다

제목 홍대용선생 묘부터 생가지까지
천안이야기 추천여행기 등록일 2016-08-23

천안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천안흥타령의 태생지이자 능수버들이 휘영청 늘어진 천안삼거리공원, 

유관순, 석오 이동녕, 유석 조병옥박사 등 애국열사들과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를 승리로 이끈 충무공 김시민장군, 

실학자이자 천체문리학의 대가인 담헌 홍대용선생과 

같은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곳 이기도 합니다.


천안이 낳은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홍대용선생 묘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18세기 들어 서양의 자연과학이 전해지며 동양의 이러한 세계관은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당시 조선에서 이러한 변화의 선두에 서 있던 사람이 

실학자, 그중에서도 북학파였던 홍대용선생이었습니다. 


홍대용선생 역시 다른 북학파들과 마찬가지로 연행(북경 여행)을 다녀오며 

중국과 서양의 앞선 과학기술에 크게 감명받고는 

연구와 관찰을 통해 자신만의 우주관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홍대용선생묘(도지정기념물 101호, 수신면 장산리)


1996년 2월 27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어 조선후기 실학자이며 과학자인 

홍대용(1731~1783)과 그의 부인 한산 이씨가 함께 묻힌 묘로써 무덤은 원형이고, 

무덤 앞에는 상석(床石)과 망주석(望柱石), 비석(碑石)이 서있습니다. 


비석을 세운 연대는 1857년(철종 8년)이며, 글을 지은이는 김홍근입니다.



묘석의 앞면에는 ‘담헌홍공대용지묘 숙인한산이씨(湛軒洪公大容之墓淑人韓山李氏)’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김흥근(金興根)이 찬(撰)한 비문을 새겼져 있습니다.



홍대용 선생 묘는 북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담헌 홍대용의 유적으로 

인물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천안을 상징하는 인물 유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홍대용선생 생가지(도지정문화재자료 제349호, 수신면 장산리)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장명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홍대용선생의 생가 터는 담헌 홍대용이 태어난 곳입니다.



천안시 수신면에는 남양 홍씨가 다수 거주하고 있으며 

가까운 해정리(海亭里)에는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홍대용선생은 장산리 장명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생가는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대에 들어 철거되었고 2005년부터 생가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현대 천문 과학자들은 조선 천문 과학을 당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홍대용의 업적을 주목하고

홍대용과 함께 ‘우주는 무한하고, 평등하다’는 

홍대용의 우주 이야기도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천안시에서는 홍대용선생의 생가 뒤 야산에 ‘홍대용 전문 과학관’ 건립하여 

홍대용선생의 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전시 공간은 물론, 

홍대용의 개인 천문대인 농수각을 재현하고 당시 과학 기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그중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난 지식인 홍대용(洪大容)은 

당장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대해서 고민했고, 

뛰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조선의 과학을 비약 발전시켰습니다.

목록 before Next

만족도조사
만족도 조사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