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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애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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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경원
구분 추천여행기
제목 천년전에 세워진 천안 국보 봉선홍경사 갈기비와 천연기념물 양령리향나무 여행

천년전에 세워진 천안 국보 봉선홍경사 갈기비와 천연기념물 양령리향나무 여행

 

우리나라 중심을 관통하는 국도1호선이 지나가는 천안시 성환읍 대홍3길에 자리잡은 봉선홍경사는

지금부터 1,000년전인 고려 현종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현종7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6년의 공사 기간을 걸쳐서 현종 12년인 1021년에 준공한 사찰로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전액 국고로 지었다는 의미에서 '봉선'이라는 사찰명이 붙여졌다.


 

고려 조정에서 봉선홍경사를 짓게 된 이유는 절이 있는 곳에 인적이 끊겨 도적이 많았으므로

이러한 우환을 없애기 위하여 승려를 불러 불법을 전하고자 절을 짓게 되었다는 기록이

봉선홍경사 갈기비 비신에 적혀 있어서 개경으로 오가는 길손들의 안전과 무사통과를 위하여 숙박시설을 갖춘 절을 세웠음을 알게 해준다.


 

봉선홍경사는 사찰로 중심건축물인 당전 등 200여 칸의 규모로 지어져서

허허벌판에 우뚝 솟아 있는 위엄을 자랑하던 사찰로 절 서쪽에는 광연통화원이라 불리는

80여칸의 객관을 세워서 개경에서 남쪽으로 오고가는 관리들과 여행자들이 묵을수 있도록 하여서 도둑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였다.


 

봉선홍경사는 고려 인종811308월 묘청에 의해 아타파구신도량을 27일 동안 개최하였고

고려 명종 711773월 망이의 난 때 절을 불태우고 승려 10인을 죽였으며

고려 우왕 9년인 1383년에는 한수가 이 절에서 축원을 하는 등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던 사찰로 조선초에는 폐허가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봉선홍경사에서 펼쳐진 아타파구신도량은 아타파구위 대장군,

즉 광신귀신 대장이 말한 다라니를 외워 재난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법회로서 강종 때에도 이 절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 이규보가 지은 도량문이 전해지고 있어서 대규모 법회가 열려서 사찰과 신도들의 안위를 기원하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봉성홍경사는 조선 초기에 절은 폐허가 되고 숙박 시설인 홍경원만이 남았으므로,

절 이름 홍경사 대신에 홍경원이라 불리고 한양을 오고가는 관리들과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

장사를 나가는 보부상 등 다양한 사람들이 묵을수 있는 시설로 인근에서 가장 큰 숙박시설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봉선홍경사는 1026년에 고려시대 최고의 유학자 최충이 글을 짓고 구양순의 황보탄비가까운 글씨로

백현례가 글자 크기 3의 해서로 용필과 짜임새가 엄정한 글씨를 써서 고려시대 해서로는

1급으로 손꼽히는 봉선홍경사기를 새긴 갈기비가 자리에 남아서 옛시절의 영광을 전해주고 있다.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19621220일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부문에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로 지정된 문화재로 갈비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하는데,

대개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석비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봉선홍경사갈기비 거북모습의 받침돌은 양식상의 변화로 머리가 용의 머리로 바뀌었고,

물고기의 지느러미같은 날개를 머리 양쪽에 새겨 생동감을 더하고 있으며

비몸돌 앞면 윗쪽에는 봉선홍경사갈기라는 비의 제목이 가로로 새겨져 있고 머릿돌에는 구름에 휩싸인 용이 새겨져 있다.


 

천안봉선홍경사 갈기비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절을 세운 지 5년이 지난 고려 현종 17(1026)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존하는 사적비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으로 용머리처럼 보이는 귀두는 오른쪽으로 돌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거북이 등 중앙에는 앙련과 복련을 새긴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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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국보 제7호)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37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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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홍경사에서 북동쪽으로 4.9km 거리 안성천변에 자리잡은 천안양령리향나무는

안성천의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양령리 마을의 동편에 위치하며

주변은 평지이고 민가의 담장이 서편과 북편 2m 이내에 설치되어 있어서 비좁은 자리에서 1,200여년을 버텨온 향나무의 후손으로 보인다.


 

천안양령리향나무는 1,200여년전 전국적으로 홍수가 퍼부었을 때 안성천이 범람하여

안성천 상류에서 떠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정착을 하게 되었고

그 후예가 세월의 흐름과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점등을 인정 받아서

2000128일 천연기념물 제427호 천안 양령리 향나무로 지정되어 문화재청의 보호를 받고 있다.


 

현재 양령리에 자리잡고 있는 향나무는 800여년의 나이로 확인되고 있어서

1,200여년전에 이 자리에 뿌리를 내린 향나무의 후손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나무높이 8.5m 근원부줄기는 4.2m 로 현재 비교적 양호한 반타원형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으며 생육 상태도 매우 좋은 것으로 확인 되고 있다.


 

천안양령리향나무는 일제강점기에 인근에 있는 민가에서 불이 나서 조금 화마를 입기도 하였지만

아직도 생생히 자라고 있는데 이 향나무에 지성을 드리면 자식을 못낳은 사람들도 자식을 얻을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러 온다는데 지성을 드릴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중령과 하령 두마을이 일제강점기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양령리가 되었고

낙농과 과수농사와 함께 수도작농사를 짓고 있는 양령리마을에서는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나무제를 지내오는 마을의 수목으로 보호를 하고 있어서 주변의 정리가 시급하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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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양령리향나무 (천연기념물 제427호)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상령길 1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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