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무효화운동
- 석오이동녕
- 이동녕 선생의 업적
- 을사늑약 무효화운동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세계열강들로부터 보호해 주겠다며 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려 하자, 이동녕은 상동교회에서 을사늑약 반대 범국민운동을 진두지휘 하였으며 을사늑약을 무효로 돌리기 위해 도끼를 메고 격렬히 상소운동을 전개하여 을사늑약의 무효화만이 탈취당한 우리의 외교권을 원상 복귀 시키는 유일의 방법임을 주장하였다.
이동녕은 을사늑약 체결장소인 덕수궁의 대안문 앞에서 혈서로 “사수독립” 이라는 글자를 써 대궐문 앞에서 상소하였다. “이는 분명히 내정간섭이요. 일본이 우리 국권을 강탈하여 우리 이천만 신민을 노예로 삼는 조약을 억지로 맺으니 최후의 일인까지 죽음을 초월하여 싸워야 합니다.”라는 격렬한 애국연설을 하였다. 이에 충돌 사태가 일어나 한국인 다수가 강제로 연행되어 갔다. 이동녕은 두 번째 옥고를 치르게 된것이다. 2개월 뒤 풀려난 이동녕은 탄압이 심해지자 국외로 나가 동포들에게 교육구국의 의지와 신념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굳은 결심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