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천안시 미디어소통센터

지금 천안은

2019. 3. 1 그날의 뜨거움 속으로(유관순 열사 서거 100주기 추모영상) 게시판 상세보기
제목 2019. 3. 1 그날의 뜨거움 속으로(유관순 열사 서거 100주기 추모영상)
부서명 홍보기획팀 등록일 2020-10-28 조회 425
첨부
유관순.png

2019. 3. 1 그날의 뜨거움 속으로(유관순 열사 서거 100주기 추모영상)


#01 intro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유관순 열사 유언 中 -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 만세!"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기 다시 찾는 그날의 뜨거움



#02. main

1902년 12월 16일 천안시 병천명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1916년 ALICE H, SHARP(한국명 사애리시)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편입.

(ALICE HAMMOND SHARP, 한국명 : 사애리시, 1871년 ~ 1972년 대한제국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충남 지역에서 선교사로 활동)

1918년 3월 18일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 같은 해 4월 1일 고등과 1학년에 진학

1919년 2월 8일 조선 청년 독립단, 2.8 독립선언 발표

그리고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

만세의 함성과 휘날리는 태극기


당시 고등과 1학년인 유관순은 서명학,김복순,김희자,국현숙 등과 함께 '5인 결사대'를 결성하여 남대문으로 향하는 시위 행렬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 대해 임시휴교령 반포(1919. 3. 10)

독립선언서를 가슴에 품고 고향 천안으로 내려온 어린 소녀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아주머니들처럼 머리에 수건을 쓰고 집에서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고 그리고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공격에 많은 군중을 쓰러지고, 어린 소녀도 일본 헌병에게 끌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


3.1운동 이후, 5백 명 정원의 서대문 형무소는 3천 명이 넘어섰다.

그리고 1년이 지난 1920년 3월 1일 수감번호 1933번 유관순 3.1운동 1주년을 맞이해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

그 사건으로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심한 고문을 당하고,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소녀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출처

이화여대 이화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독립기념관

유관순열사기념관

만족도조사
만족도 조사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담당부서 :  
홍보기획팀
담당자 :  
송정은
연락처 :  
041-521-5183
최종수정일 :
2021-11-16 1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