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지명유래

공유열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
제목 신당동
팀명 부성동 등록일 2015-11-30 조회 3655
첨부
 
동리의 토속지명은 샛터(新垈)다. 새로 터를 잡고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온 것이다. 본래 이 마을은 현재의 마을보다는 동남쪽에 산기슭 금배골이라고
하는 곳에(현재의 신당동저수지가 있는 곳) 있었으나 1894년 동학혁명후에 현재
의 마을로 옮겨진 것이다. (현재의 마을에 몇가호는 그 이전부터 있었음)
국도변에 발달된 취락이라 많은 공장이 설치되었고 특히 최근에 개방교도소가 건
립된 후에는 더욱 도시화되어 가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新垈
松堂 建峰亭과 獨酒幕이 일부가 합쳐서 新垈와 松堂의 부락명을 따서 新堂里로
하여 영성동에 편입되었다가 1931년 天安邑제가 실시되면서 환성면에 속하고
1963년 天安市가 되면서 新堂洞이 되었다.

권선달산(權先達山) : 신당동과 천안군 성거읍 요방리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산
으로 마을 동쪽에 있다. 옛날 이 마을에 권선달이라는 사람이 이 산
을 사서 자기의 조상을 장례지내고 선산을 만들었다고 권선달산이다.
(先達 :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하고도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사람을
말함)

세집매(三家街) : 경부국도에서 서쪽으로 업성동 들어서는 길과 동쪽으로 신당동
송당부락에 들어서는 十子路邊에 있다. 약 50여년전에 세집이 세워
져 살았다고 세집매다. 지금은 10집이 모여 살고 있으며 한 개의 부
락이 형성 되었다.

검배골(黑岩谷) : 지금의 신당동 저수지가 잇는 곳. 옛날 이곳에는 검은색의
큰 바위가 있어 검은 바위골이라 하였다가 소리나는대로 준말이 되어
검배골이 되었다. 신당동마을이 처음에는 이곳에 있었으나 1894년
이후에 현재의 마을로 옮겨갔다.

검배방죽 : 검은바위골 방죽이다. 지금의 신당동 저수지를 말한다.

큰봉재, 작은봉재 : 샛터마을의 뒷산이다. 마을뒤의 큰봉우리고 작은봉재는 큰
봉재의 앞에 있는 산을 말한다. 마을의 안산이다. 峰은 산을 뜻하
고 재는 낮은 구릉이나 고개를 이르는 말로 큰봉재를 넘어가는 고갯
길이 있어 천안군 성거읍의 석교리로 넘는 길이 있다. 동리에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1919년 3.1운동때 봉화를 이곳에서 올렸다는 말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월경리(월갱이 : 越境, 松堂) 샛터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1.5km 정도에 있다.
본래 稷山현에 속하였던 곳이나 1914년에 천안읍의 환성면에 속하게
되었다가 天安市에 편입되었다. 옛날에는 天安邑과 稷山縣 사이에
끼어있어 天安 방에서 잠자고 직산부엌에서 밥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
도이며 한집이 방과 부엌을 나눌정도로 경계에 있는 부락이다.
부엌과 방을 오가는 사이에 경계를 넘나든다고 하여 越境이다.
앞마을의 솔밭에 松亭이라는 亭子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자취도
없다.

재마당(제마탕:祭堂) : 샛터마을 뒤쪽에 있는 산기슭.
약간의 비탈은 되어 있으나 넓고 커서 마을의 놀이터로 이용되었으나
최근에는 밭이 되었다. 마을의 동제나 산제를 지내던 곳으로 재마당
은 祭堂이 변해서 된 말이다.

수렁골(濕谷) : 검배방죽(신당동저수지)이 있는 골짜기. 수렁논이 많아서 수렁
골이다. 수렁이란 습기가 많은 늪지대를 말하는 것으로 심한곳은 사
람이나 짐승이 늪에 빠지면 그대로 파묻혀 죽게되는 경우도 있다.

바위넘어 : 수렁골 위쪽 검배방죽의 동쪽의 협곡을 말한다. 이 골짜기를 넘으면
천안군 성거읍 요방리 욧골부락에 닿게된다. 골짜기 위쪽에 검은 큰
바위가 하나 있고 옛날에 있었던 오솔길이 지금도 남아있다. 여기있
는 검고 큰바위가 길의 안내판 역할을 하였고 오늘날의 이정표와 같
은 구실을 하였다.

당넘어골(堂넘어) : 현재의 경부국도에서 샛터마을의 개방교도소로 연결되는 도
로변의 골짜기 이름이다. 샛터마을에서 국도 쪽으로 작은 구릉이 있
고 이 구릉위에 작은 신당(神堂)이 있었다.(Shamanism 계통의 신당)
이 신당의 너머에 있는 골짜기라 하여 當넘어골이라 하였다.

연봉정(延蜂亭) : 부대동과 신당동의 경계가 되는 성황동 고개를 넘으면 부대초
등학교와 천안공업전문대학으로 들어서는 길과 샛터길로 들어가는 十
字路가 있다. 이곳에서 성환쪽으로 약 500m 국도서편에 있는 낮은
구릉은 몇 년전까지도 울창한 솔밭이었는데 지금은 과수원지대로 변
했다. 이곳이 延峰亭이다. 또는 蓮峰亭이라고도 한다. 조선조때
天安邑과 稷山縣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조선조때는 이곳에 연봉정
이라고 정자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없다.
중앙의 지체 높은 관리가 天安郡에 올때면 天安郡守가 이곳까지 나아
가서 맞아 예를 갖추었다고 하여 연봉정이다. 물론 가는 분도 이곳
까지 와서 환송을 하였던 것이다.

무당바위 : 샛터에서 월경(松堂)마을로 가는 길가에 있던 바위. 개방교도소가
설치되면서 없어졌다. 무당들이 바위위에 떡을 해놓고 빌었던 바위
라 무당바위라고 전한다. 이 바위는 蓋石과 支石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支石 (고인돌) 인 듯 하나 조사 이전에 없어져서 아쉬울 뿐이
다.

불당골(佛堂谷) : 샛터마을에서 국사봉 쪽으로 가는 골짜기에 옛날에는 작은 암
자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없다. 암자가 있었던 자리에 기와조각
이 많이 나오고 있다.

샛터(新垈) : 본래 검배골에 마을이 있었으나 1894년 동학혁명후에 지금의 마을
자리로 옮겨졌다. 新堂洞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골이 아홉 개 있
어 九谷洞이라고 하였다. 아홉 개의 고을은 금배골 참새골 각골 불
당골 절골 대부골 장터골 도둑골등 이다. 최근에 개방교도소와 소년
원이 설치되면서 도시화 되어가고 있다.

목록 링크복사

만족도조사
만족도 조사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담당부서 :  
총무팀
연락처 :  
041-521-6987
최종수정일 :
2024-04-04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