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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아한 모습의 천안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천안이야기 추천여행기 등록일 2016-07-16

시간을 거슬러 옛 선인들의 정취를 접하는 시간여행을 하고자 

천안 관내의 충청남도유형문화재를 찾아

동남구 목천읍 동리 운봉산에 있는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여래상이란 불교이 창시자인 석가모니께서

깨달아 부처가 된 모습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용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서,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지만 발굴된 유물들로 미루어 보아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내부에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으며, 

불상 뒤로는 천불이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유물로는 삼층석탑과 석조여래입상이 남아 있습니다. 

석조여래입상은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불상의 복스러운 얼굴에 눈은 지그시 감은 듯하며, 

콧날은 오뚝하고 입은 작지만 단정합니다.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자비로운 느낌입니다.


육계는 둥글고 큼직하게 표현되었고, 

머리 모양은 소라 모양의 나발 형식입니다.


양손은 가슴 부분에서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오른손은 손가락이 위를 향하고 왼손은 손가락이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석조여래입상이 하나 더 있는데, 

절 뒷편 고갯마루 언덕에 와불(臥佛)상태로 누워있던 것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여 세웠으며, 

불두(佛頭)는 용화사 앞의 산방천(山方川)에서 수습하여 합체하였다고 합니다. 



불두는 어느 시기에 예리하게 톱으로 잘린 것처럼 일정하게 

잘려 나갔는데 최근에 다시 몸체와 합성하였다고 합니다.

불두와 몸체가 각기 다른 재질로 보이는데 이는 머리 부분이 

산방천 뚝방에 오랫동안 흙속에 파묻혀 외견상 색깔이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통일 신라 시대 말기나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의 석불 입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유물이라고 합니다.



불상 주변에 주춧돌 5개가 남아 있어 

보호각이나 불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사찰이 무너진 자리에 남아 있는 주춧돌, 

불상을 세우며 당시 살아있는 사람들의 꿈을 만나자면 

흥망성쇠의 보편적 이치, 무상함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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