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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을이 내려앉은 유관순 생가를 찾아
천안알리미 생활정보

1902년 12월16일 유관순 열사가 태어난 생가에는 커다란 낙우송이 생가를 품고 있어서 돋보였는데요.
빈 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초가집 본체와 부속사로 복원(1991)하였다.
생가 옆에는 박화성이 시를 짓고, 이철경이 글씨를 쓴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위치해 있다.
 
유관순 열사 유적(생가지 / 사적 제230호)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338-1


매봉교회는 유관순 열사 생가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요.
1919년 만세운동 이후 1923년 폐쇄되었다가 1967년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이화여자고등학교가 창립 80주년을 기념하여 재건립하였다.
지하 1층에 유관순 열사의 전시관, 1층에 교육관과 사택, 2층에 예배공간이 있다.
 
유관순 열사 생가 비문은 유관순 열사의 생애가 짧고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으로 집마저 불타 열사와 관련된 자료가 없는 실정이라 그동안 열사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았다.
해방 이후 유관순 열사의 전기나 영화 등에 묘사된 것들이 마치 역사적 사실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유관순 열사의 연구에 진척이 있어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생년월일, 순국일 등이 밝혀졌다. 또한 한글맞춤법이 바뀜에 따라 이에 대한 오류도 볼 수 있다.
 
유관순은 미국에서 온 샤프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고등학교 1학년말 때인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유관순은 학교장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3월5일 학생들이 중심이 된 만세운동에 동참하여 시위하다 일본 헌병에 체포되게 된다.
일본 헌병에게 유관순은 "우리가 뭘 잘못해서 잡아온 거죠?
잘못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일본에 있는 거 아닌가요?
어서 우리를 풀어줘요!"하고 당당하게 외쳤다고 한다.
그후 유관순은 이화학당 프라이 교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되고, 일본은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벌이는 것이 두려워 3월10일 휴교령을 내리게 된다.
 
1902년 12월16일 태어나 어린시절을 살았던 곳인데요. 조심스럽게 생가를 둘러보았습니다.
 
작은방에는 유관순이 태극기를 만들고 있는 인형모형과 3.1운동당시의 태극기와 현재의 태극기를 비교해 두었는데요.
 
안방에는 유관순의 모친(이소제), 숙부(유중무), 김구웅(교사), 마을유지(조인원), 부친(유중권)의 인형모형이 있다.
 
아담한 초가집으로 꾸며진 소담스러운 생가 주위에도 가을이 내려앉았다.
 
생가에서 보면 담 너머로 매봉교회가 보인다.
 
매봉교회 지하 1층 유관순 열사 전시관에는 문이 잠겨 있어 안타까웠는데요. 전시관 입구에 걸려있는 현수막에 의존하며 기념관을 대신할 수 있었다.
 
매봉교회를 나와 마을길을 들어서면 유관순의 흔적들과 가을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었는데요.
 
유관순 열사 생가 관리사에는 유관순 열사의 남동생인 유인석씨의 가족이 거주하였으나 현재는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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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