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에 석오 이동녕 선생의 기념관과 생가가 있습니다.
석오 이동녕(1869~1940) 선생은 1906년 용정에서 서전서숙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고
1910년 서간도에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전력하였으며
3.1운동 후 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으로서 임시 의정원 초대 의장, 국무총리, 국무위원, 주석 등의 중책을 맡아
어려운 시기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1940년 급성 폐렴으로 72세를 일기로 중국 기강에서 서거하였고, 임시정부 국장으로 모신 뒤,
광복 후 김구의 주선으로 유해를 봉환하여, 사회장으로 효창 공원에 안장하였습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앞에 기념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태극기와 함께 이동녕 선생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고,

이어 선생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전시관 안에는 선생이 쓴 산류천석과 광명, 대의가 액자에 담겨 있습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의 산류천석
광복을 의미하는 광명, 독립 운동을 의미하는 대의
모두 1930년대에 중국 기강에서 쓴 것입니다.

옆에는 임시정부 시절 강서성 진해 선생에게 썼던 편지와

당시 사용했던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1921년 임시정부 신년 축하식 때 찍은 사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신임 각료들이 사진입니다.

전시실에는 이동녕 선생을 가운데로 좌우에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좌석하고 있습니다.

이동녕 선생이 즐겨 쓴 산류천석 휘호를 새긴 표지석이 생가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산류천석이 쓰인 빨간색 느린 우체통이 옆에서 살짝 보이는군요.

선생의 생가 앞에 세운 안내문에
서전서숙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것,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활약상,
1940년 사망 후 효창 공원에 안장한 것 등 선생의 약력을 자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선생의 생가지에 다시 세운 집입니다.
ㄷ자형 안채와 대문간채로 구성되었으며,

3칸 대청 마루를 가운데로 양옆에 안방과 사랑방을 각각 두었고,


좌우에 한 칸짜리 방 세 개를 각각 이어 붙였으며,

전면에 대문이 딸린 대문간채가 배치되었습니다.

안채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입니다.

집 밖에 우물이 있고,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천안이 자랑하는 석오 이동녕 선생을 만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오 이동녕 기념관, 생가지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6
* 운영시간: 매일 09:00~17:00
단, 월요일 정기 휴일
*주차 가능
*입장료 없음
*전화: 014-521-3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