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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전설/설화

제목 성남면 용원리 용산마을 장승제
읍면동 성남면 등록일 2004-12-27 조회 2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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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서 대전쪽으로 내려 가다가 독립기념관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다시 천안쪽 향하여 좌측으로 가다가 동성휴게소를 통과하여 성남면 소재지인 신사리를 향하다 보면 용원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보면 경부고속도로 밑으로 난 지하통로를 지나면 용원리 2구인 봉산마을이 나타난다.

고속도로에서 20여미터 떨어진 마을의 진입로 좌우측 느티나무에 장승을 세워 놓았는데 동리쪽을 보고 좌측에는「北方黑帝逐鬼大將軍(북방흑제축혼대장군)」이라 복판에 쓰고 얼굴 부분은 묵서해서 그려 놓았다.

큰 느티나무에 몇기의 숫장승이 철사로 묶여 있으며 옆에는 솟대(마을 주민들은 오리라고 부른다)가 높다랗게 있고 정월에 쳐놓은 금줄이 아직도 남아 있어 넝쿨이 그 금줄을 타고 올라 가고 있다.

숫장승은 머리에 관을 썼고 재질은 소나무로 사용했으며 높이 1.7∼2.5 m정도이고 굵기는 25∼35㎝ 정도였다.

맞은 편에는 복판에「北方黑帝逐鬼大將軍(북방흑제축혼대장군)」이라고 묵서한 암장승이 몇기 옻나무에 묶여 있고 역시 오리가 1기 있다.

이 나무도 숫장승을 묶어놓은 느티나무와 같이 큰 것이었는데 10여년 전 불에 타서 없어지고 그 자리에 옻나무가 한그루 자라서 그곳에 세워 있었다. 암장승은 머리에 족두리를 썼고 장승의 틈바구니에는 정월에 제를 지낸 후에 음식을 한지에 싸서 찔러 놓은 것이 아직도 있다.

장승을 지나서 30여미터 정도 들어가면 마을이 시작되고 우측 논둑가에 공동우물이 있다. 지붕을 해서 덮었고 네모난 우물은 시멘트로 발라 놓았다. 예전에는 이 물을 식수로 사용했는데 요즈음에는 허드렛물이나 제사(용왕제)때만 사용한다.

용산마을은 산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 갔다고 하여서 그 산을 용산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장승제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아주 오래전에 마을에 괴질이 돌고 젊은이들이 병에 걸려 차례로 죽어 가는데 마을에 사는 노인의 꿈에 한 신이 현몽하여 마을의 입구에 장승을 세우고 제를 올리라고 하여서 그대로 하였더니 질병이 없어졌다고 한다.

동리에서 전하는 말로는 조선조 초기때라고 하니 500여년의 역사가 깊은 제의식이다.

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 11시쯤 되어서 지낸다. 정월초가 되면 마을 연장자들이 모여서 마을의 주민 중에서 부정이 없고 정결한 부부를 골라 생기복덕을 가려서 남자를 제주로 선정해 놓고 외에 축관과 일을 도울 사람도 정해 놓는다.

제관이 정해지면 마을의 젊은이들이 10일쯤 되면 풍물을 치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제사에 쓸 돈을 염출하는 걸립을 하는데 어느 집이나 다만 소지값이라도 내며 살기가 풍족하면 돈과 함께 쌀도 내놓는다.

정월 12일이 되면 동리를 깨끗이청소하고 용왕제를 지낼 공동 우물의 물을 다 퍼내고 청소한 다음에 13일이 되면 왼새끼를 꼬아서 길지를 느린 금줄을 만들어 동리의 입구, 장승, 우물, 제관의 집 문전에 치고 장승서부터 우물, 제관의 집 앞까지 황토를 뿌려 놓는다.

열나흗날 날이 밝으면 동리 남자들중에서 깨끗한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장승을 만들 나무와 오리를 만들 나무를 캐어와서 장승과 오리를 만들어 세워 놓는다.

열나흗날이 되면 동리의 주민전체가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있다가 자정이 가까워지면 먼저 농악이 앞장서서 제관들을 인솔하고 용왕제를 지낼 우물 앞에 진설해 놓고 용왕굿을 하는데 전에는 마을에 고사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소리를 했으나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는 축문을 대신 읽는다.

용왕굿이 끝나면 장승있는 곳으로 가서 장승제를 지내는데 분례 - 분헌 - 헌직 - 고축을 한 다
음에 먼저 장승소지를 올리고 배례하면 30여호 마을의 가가호호마다 소지를 다 올리고 끝낸다.

제물은 돼지머리, 삼색실과, 포와 떡을 준비하며 제사에 쓰일 술은 제관의 집에서 담근다. 떡은 1말을 하는데 제가 끝나고 나면 조그맣게 떼어서 한덩이씩 나누어 주며 이 떡을 먹으면 재수도 좋고 질병이 없다고 하여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용왕제가 끝나고 장승제도 끝나면 정월 보름 2시경이 되는데 우물의 물을 서로 먼저 길어가려고 한다. 제일 먼저 길어다가 밥을 지어 먹으면 풍년이 들고 집안이 평안해진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용산마을은 아직도 동네에 병신이 된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하는데 이는 다 장승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일이 되어서 마을에 불상사가 생기면 2월로 제를 연기해서 지낸다. 이 마을에 김덕문이라는 이가 살았는데 아들이 하나밖에 없어서 늘 자손을 많이 두길 원했다.

자리를 매어서 5일마다 한번씩 서는 천안장에 내다 팔곤 하였는데 가고 오는 길에 꼭 장승 앞에 가서 절을 하고 아들, 딸 9남매만 자손을 보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이름을 대 가면서 빈 연유에서인가 김덕문은 7남2녀의 손자, 손녀를 두었는데 한 자손도 잃지 않고 성정하여 마을을 지키고 있다.

긴 시간을 지켜 온 용산마을의 장승제는 마을 수호장승의 기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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