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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서동
팀명 신안동 등록일 2015-11-30 조회 6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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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명으로 엄리 또는 암리가 주된 부락으로 嚴里 岩里가 원음이다. 지금도 신천
부락의 윗쪽에 안서골(安棲谷)이 있어 이것에 연유되어 안서동이라고 하였다. 성
거 입장 안성으로 이르는 도로변에 발달하였고 대개의 부락이 동쪽의 높은산을
등지고 서향하였으며 山村지역이다. 산간의 계곡을 따라 부락이 발달되었고 上岩
(윗말) 中岩(중말) 下岩(아랫말) 新川(신천) 水越(무너미) 등으로 나뉘어졌다.
본래 천안군의 북일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서리
로 되면서 1931년 천안군 환성면에 예속되었다가 1963년 천안시가 승격되면서 안
서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최근에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태조산 각원사가 세워지고 동양최대의 불상이 안치
되면서 갑작스럽게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된 곳이다.

상암(上岩:상엄리, 윗말) : 엄리(岩里)중에서 가장 윗쪽에 있는 마을이라 上岩
또는 윗말이라고 한다. 지금의 각원사가 있는 아래쪽에 펼쳐졌다.
계곡따라 양쪽으로 발달되었고 최근에 관광지로 변하여 많은 상가가 세
워졌고 각원사와 좌불상을 찾는 관광객도 많다. 山地라 참나무가 많고
도토리묵이 명산이다.

중암(中岩) : 湖西大學이 설치된 주변의 마을이다. 계곡의 중간에 있다하여 중
암 또는 중말이라고 한다. 오른쪽으로는 쇠목고개를 넘어 유량동으로
통하고 왼쪽으로는 좌불상쪽으로의 갈림길이다. 왜정때부터 금방앗간이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흥청거렸던 곳으로 지금도 당시에 쌓았던 복사
가 쌓여있다.

하암(下岩, 아랫말) : 계곡의 가장 아래쪽에 발달하였다고 하암 또는 아랫말이라
고 한다. 지금의 천호저수지의 동쪽이며 상명대학이 마을의 북쪽 언덕
에 있다. 대학이 설치된 후로 급격히 마을이 커졌고 교통도 발달되었
다.

유려왕사지(留麗王址) : 상명대학이 있는 남쪽언덕 아래쪽에 있었다. 지금은 자
취조차 없으나 1961년에 이곳에서 작은 석탑이 나와 확인되었으며 탑은
삼거리 공원안에 안치되어 보존되고 있다.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이곳에 와서 머물렀다하여 留麗王
寺라고 하였다하나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신촌(新村, 신천:新川) : 무너미 골짜기 아래쪽에 펼쳐진 마을.
천호저수지의 상류쪽에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자리잡고 있다.
1920년대부터 상류쪽에 금광이 형성되어 채광된 광석을 이곳에서 모아
금방아를 찧었다. 전학근씨가 처음 금방아를 설치하고 많은 금광석을
지어 지금도 그때의 복사가 주변에 동산처럼 남아있다.

무너미(水越:물넘이, 천안무너미) : 낮은 고개 하나를 두고 남쪽으로는 천안무너
미, 고개너머 북쪽에는 직산무너미 마을이 있다. 무너미란 물이 넘어
간다고 하여 본래 물넘이다. 계곡의 상류에 무너미방죽이 만들어져서
물이 넘어가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고개에 최근에 물이 넘어간다.
참으로 조상들이 붙인 지명에 감탄할 수 있다.
무너미고개는 옛 천안군과 직산현을 나누는 경계이면서 分水領이기도
하다. 고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망향동산을 옆으로 끼고 직산무너미
를 지나 성거읍 요방리 석교리 앞을 흐르는 한내(寒川)에 합해지고 입장
천에 이르러 안성천의 거대한 내에 들게 되고 아산만에 닿는다.
한편 무너미 고개의 남쪽으로 흐른물은 천호저수지에 가두어졌다가 천안
천이 되어 아산의 곡교천에 합해져 아산만에 이른다.
※ 예부터 天稷山이 높다더니 그말을 실감나게 하는 고개이다.
※ 일설에 따르면 천안무너미 물이 고개를 넘어서 직산무너미로 넘어간
다고 하였는데 이제 그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볼 수 있다.

벌명당(蜂名堂) : 예부터 땅벌이 집을 짓고 사는 곳은 명당이라고 하였다.
안서골 뒷산의 무너미고개 위에 있다. 옛날 어느 사람이 이곳에 아버지
무덤을 쓰려고 묘혈(墓穴)을 파고 광중(壙中)을 지으려고 하였더니 수천
마리의 벌이 땅속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벌이 날아간 자리
에 시신을 묻고 장례를 치른 뒤 그 후손들은 모두 입신양명하였다고 전
하며 그 전설에 따라 지금도 벌명당으로 불러지고 있다.

승적골(勝賊谷) : 벌명당 북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이곳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고 승적골이라고 하였다 한다.

성불사(成佛寺) : 태조산 서북쪽 산중턱에 있는 조계종계의 사찰, 신라말기에
풍수지리설을 처음으로 열었던 도선(道詵) 선사가 창건하였고 고려목종
(穆宗) 5년에 담혜선사(湛惠禪師)가 중건하고 고려 원(元宗) 12년(1271)
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 성불사 石佛에 대한 전설
옛날 하늘에 살고 계신 옥황상제께서 두 마리의 仙鶴을 불러 인간세상에
내려가서 두 軀의 石佛을 만들고 올라오라는 명을 내렸다. 두 마리의
학은 부지런히 인간세상에 내려와 부처를 쪼을만한 돌을 찾기 시작하여
그중의 하나를 찾아 두 마리의 학이 힘을 합쳐서 太祖山의의 돌부터
부리로 쪼아 석불을 만들기 시작하여 부처를 완성하고 이웃 聖居山에
가서 돌을 쪼으기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해가 서산에 걸리고 날이
어둡기 시작하여 두 마리의 학은 석불을 완성하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
갔다. 그후 학은 다시 오지않고 미완성의 부처는 그 자태 그대로 남았
다. 仙鶴이 부처를 쪼아 만든 자리에 사찰을 세웠는데 완성한 부처를
모신곳은 成佛寺라고 이름짓고 날이 저물어 미완성의 부처를 모신곳은
晩日寺라고 이름지었다.

갈뫼골(葛뫼, 葛山) : 벌명당의 동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에서는 걸매골로 불리
우나 갈뫼가 변하여 걸매가 되었다. "갈"은 칡을 말함이고 "매"는 뫼를
말함이니 칡이 많은 산이라 갈뫼라고 하였다.

안소골(安棲谷:안서골) : 벌명당의 북쪽에 있는 골짜기.
안소골이라고 부르나 안서골이 원음이다. 지금의 안서동이 유래가 여기
에서 온 것이다. 무너미 골짜기의 가장 깊숙한 곳이며 사람들이 편안히
쉬며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안서골이다.

장터골 : 산촌마을에서 천안군 성거읍 요방리로 넘어가는 고개길. 접티고개로
길이 만들어진 후에는 길이 없어졌다. 옛날에는 큰 길이 있었고 길가에
장사들이 모여서 장이 섰다고 하여 장터골이라고 한다.

접티고개(接峙:접시고개) : 천안시 안서동과 천안군 성거읍 요방리의 경계가 되
는 고개.
지금은 경부고속도로가 고개 위로 지나고 있다. 고개 서쪽으로 단국대
학교의 야구장이 있다. 접티고개 남북의 分水領으로 예부터 천안군과
稷山縣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郡界와 縣界를 이루던 고
래라 接峙라고 하였다. 접티고개는 무너미고개와 같이 安城川과 天安
川의 源流가 되는 곳이어서 天稷山의 막바지로 하늘아래 첫고개라고 한
다.
※ 옛날부터 湖西지방에서 가장 높은 곳은 天安과 稷山이라고 하였다.

원정골(原井谷) : 벌명당 서남쪽 승적골옆의 골짜기. 이곳에는 차고 물맛이 좋
은 냉천(冷泉)이 있어 원정골이라고 하였다. 근방의 여러 부락이 원정
우물을 식수로 하였으며 옻나무 독에 피부가 상한 사람들도 이 우물로
목욕을 하면 깨끗하게 낫는다고 하여 옷샘으로 부르기도 한다.

쉰질바위(五十丈岩) : 성불사 북동쪽에 있는 바위. 바위가 크고 높아서 쉰질
(五十丈)이나 된다고 하여 쉰질바위라고 하였다.

고추날 : 좌불상을 향하여 올라가는 비탈진 날맹이 비탈이 심하고 고추같이 우뚝
섰다고 고추날이라고 하였다.

쉴터(休垈) : 각원사를 올라가는 연못아래의 터. 지금은 버스정류장이 되었다.
정류장이 되기 이전부터 쉴터라고 하였으니 지명이 맞아든 셈이다.

쇠목고개(牛首峙) : 중암마을 호서대학에서 유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太祖山과 王字山을 연결하는 오목한 곳에 최근에 포장도로가 만들어졌
다. 소(牛)가 누워있는 목부분에 길이 났다고 쇠목고개이다.

대골(垈谷) : 현재의 호서대학교가 세워진 자리다. 大골이라 大學이 세워졌다고
하나 大谷이 아니라 垈谷이다. 옛날에 쇠부리터다, 쇠부리터라 함은
쇠를 달구어내는 곳으로 대장간을 말한다. 수천년까지도 금광이 설치
되었다. 지금도 동구앞의 흰복새가루는 왜정때 이곳 금광에서 금광석
을 빻았던 돌가루다.

대감묘(大監墓) : 상명대의 점문쪽에서 동쪽으로 호서대학의 기숙사가 있는 뒷
산에 있다. 산위 대감산 묘를 대감묘라고 부른다.
조선 영조때의 碩學陶庵 李○선생의 묘로 알려지고 있으나 확실치 않
다. 牛峰李氏들에 의하여 제사 지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인 듯
하나 확실치 않다.
앞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탑골(塔谷) = 유려왕사지와 같다.

응달말 : 음달마을의 변음이다. 상암마을의 길갓마을이다. 뒤로 대감산이 막혀
서 오후에는 그늘이 지고 일조시수가 짧아서 항상 그늘이 진 마을이라
응달말이다.

온자묘터(은자묘터:隱者墓垈) : 성불사 위쪽 쉰질바위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속세를 떠나 초야에 묻혀살던 어느 선비의 무덤이 있다고 하여 은자묘
터가 변하여 온자묘터가 되었다. 다른설에 의하면 백제시조 온조의 사
당이(溫祚廟) 있었다고도 하여 溫祚廟터라고 한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대좌불상(大座佛像) : 태조산 서북쪽의 기슭의 연화봉(蓮化峰) 위에 안치되었다.
귀의 길이만도 1.75m, 높이가 14m, 둘레가 약 30m로 청동 60t이 소요된
동양최대의 대불이다. 12가지의 인연과 48가지의 중생의 소원을 들어
준다는 무량불 아미타여래상이다.
1975년에 시작하여 1977년 5월에 완성되어 현재에 이르렀으며 대좌(臺
座) 밑에 지하에는 8만대장경과 여러 가지 불경이 보관되었다.

203계단 : 태조산 타불상을 올라가는 203계단을 말한다.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계단과 관세음보살의 32화신(化身)을 뜻하는 32개의 계단과 48
가지 소원과 12가지 인연을 맺어주는 아미타여래의 뜻과 불보, 승보,
법보를 뜻하는 3보로 전체의 계단이 203개다. 계단 기둥에 붉은 글씨
는 통도사에 계셨던 경봉스님의 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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