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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방동
팀명 신방동 등록일 2015-11-30 조회 3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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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산의 서쪽기슭과 온양가도의 동쪽에 펼쳐진 동. 본래 天安郡의 군남면지역
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통정리, 상신리, 중신리, 하신리, 신흥
리, 방산리를 합쳐서 신리의 머리글자 신자와 방산리의 머리글자 芳자를 따서 신방
리라 하여 환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천안시에 속하면서 신방동이 되었다.

상신(上新 : 윗새말) : 새말에서 가장 북쪽에 있고 큰 마을이다. 일봉산 서쪽의
산 기슭에 발달된 취락으로 마을이 아늑하고 양지 바르다.
약 400년쯤 전에 김해김씨들에 의하여 형성된 마을이며 지금도 그들의
후손이 많이 살고 있다. 그들에 의하여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불리
워진 것이 새말로 되었다.

중신(중새말 : 中新) : 윗새말과 아랫새말 사이에 펼쳐진 마을이라 중새말이라고
하였다. 마을 뒤에는 낮은 구릉이 있어 서북풍을 막아주고 앞에 펼쳐
진 들은 전형적인 도시속의 농촌형태를 이루고 있다.

하신(아랫새말 : 下新) : 새말동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다. 온양가도에서 눈들마
을로 가는 도로변이다. 가장 아래쪽에 있다고 아랫 새말이다.

정문거리(旌門거리) : 온양가도 조일성냥공장 못미쳐에서 위새말로 넘어가는 낮
은 고갯 길. 옛날 이 고갯길에 김해김씨의 정문이 있어서 정문거리
라고 하였다.(누구의 정문이고 忠旌인지 孝旌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자취가 없다.

새말고개 : 위새말에서 두텃골로 넘어가는 고개. 일봉산 서쪽의 낮은 구릉을 넘
게 되었으며 눈들마을로 연결되었다.

조씨정문(趙氏旌門) : 새말고개 정상에 최근에 세워진 정문이다.
김해김씨가 충주에서 이사오면서 할머니의 열녀정문을 이곳에 옮겨 세
웠다.

왕영울고개(往嶺) : 천안시내에서 온양으로 가는 길에서 신방동 위새말로 넘어가
는 낮은 고개.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으나 지금은 한적하
다. 왕령(往嶺)이란 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울은 한자의 柵에서 온 말
이다. 본래 이 고개는 생긴 모습이 소가 누어있는 형상이라 와우령(臥
牛嶺)으로 불리던 것이 소리나는대로 변하여 왕령고개가 되었다.

장사골 : 중새말의 산 뒤편에 있는 골짜기. 옛날 골짜기에 큰 부자가 살았다고
장자골이 변하여 장사골이 되었다고 하며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이곳에
힘이센 장사가 살았다고 하여 장사골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지금도 골
짜기의 이곳 저곳에서 옛기와가 나오고 집을 지었던 주춧돌이 흩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탑상골 : 중새말 장사골 옆에 있다. 탑(塔)이 있었다고 탑상골이라고 하였다.
터에서 나오는 와당조각으로 보아 고려때에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
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탑은 후에 중새말 동내로 옮겨졌다
고만 전하고 있으나 탑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배꼽뿌리 : 온양가도에서 아랫새말로 들어가는 산모퉁이. 용주상(龍珠像)이 있
는 곳에서 동쪽으로 약 550m 지점이다. 새말 뒷산이 이곳에 와서 끊어
지고 끊어진 산모형이가 어린 아이들의 배꼽처럼 뾰족하게 튀어 나왔다
고 배꼽뿌리다.

군수 홍탁의 선정비(郡守洪탁의 善政碑) : 조선조 말기(순조때)에 부임했던 천안
군수다. 그는 군수재임시에 관아를 수축했다하며 선정을 베풀고 이천
부사(利川府事)로 영전하였음이 영성지에 기록되었다. 선정비는 배꼽
뿌리 산모퉁이에 현존하고 있다.

벌명당(蜂名堂) : 배꼽뿌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온양가도의 큰길에서 보인다.
옛날 어느 지관(地官)이 이곳을 보고 하도 좋은 길지(吉地)라 묘지로
쓰면 후손이 잘된다는 말을 듣고 마을 사람이 그곳을 파보았더니 벌이
수천마리가 땅속에서 날아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고 명당임을 확인했다고
하여 벌명당이다.

지킴골(守谷) : 배꼽뿌리 서쪽에 오목하게 파여진 골짜기. 몇 년전까지 이 골짜
기에 서낭이 있었고 장승이 있어 서낭이 마을을 지켜준다고 하여 지킴
골이라고 하였다. 서낭이나 장승은 없어지고 흔적만이 남아있다.

신흥리 : 새말건너 동방초등학교 왼쪽 진방산 아래에 펼쳐진 마을. 연일정씨들
에 의하여 새로 이축된 마을이다. 새로 이축된 마을이라 신흥리다.

진방산(鎭芳山) : 방산(芳山 : 소애) 마을의 진산(鎭山)이라 진방산이라고 하였
다. 신흥리와 방산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이곳을 경계로 하여 천안군
과 아산군의 경계가 되고 있다.

방산(芳山) : 마을의 토속지명은 소애다. 마을 뒷산인 진방산이 지형지세가 소
가 누어있는 모습으로 되었어 와우형(臥牛形)에서 따온 "소"와 "애"는
소의 등을 뜻하는 것으로 소등애의 준말이 소애가 되었다.
양지 바르고 들이 넓어서 생활하기가 매우 좋은 곳이다.(소등애)

소다리들(새말들) : 새말동리 앞에 펼쳐진 들. 들의 북쪽은 좁고 남쪽은 점차
넓어져서 생김새가 소의 뒷다리 모습과 같아서 소다리들이라고 하였다.

안골(內谷) : 소애와 통새골 사이에 남쪽으로 깊이 들어가 있는 마을.
골짜기의 남쪽끝은 천안군 풍세면에 인접되었다. 소애마을 안쪽에 깊
이 들어가 있다고 안골이다.

청산뜸뫼 : 소애마을에서 눈들 마을을 바라보고 펼쳐진 들. 옛날에는 들가운데
낮은 구릉이 있었고 구릉 위에 푸른 솔밭이 있어 청산뜸뫼라고 하였
다. 지금은 구릉도 솔밭도 볼 수 없고 모두 밭이나 논이 되어 들로 변
했다.
※ 뜸이란 산비탈이나 들가운데 형성된 마을을 말한다.

신방제(新方堤) : 소애마을과 새말 앞으로 흐르는 천안천의 냇뚝을 신방제라고
한다.

쇠바위재 : 소애앞들에 있는 작은 동산 약 20년전까지도 이곳에 "소"를 닮은 모
양의 큰 바위가 있어서 쇠바위재라고 하였다. 쇠바위는 다리를 놓는
곳에 밀려와서 다리를 놓는데 이용되었다.

통새골(通井) : 풍세가도에서 소애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에 발달된 첫동리다.
마을 앞들 복판에 매우 큰 우물이 있어 소가 통속의 물을 마시는 형상
이라 통새골이라고 하였다.
※ 通井보다는 桶井이 옳다고 본다.

우두산(牛頭山 : 쇠머리산) : 통새골 동남쪽에 있는 산.
소의 머리를 닮아서 우두산이다. 소가 머리를 길게 빼고 통새골 들에
있는 우물의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 마을 이름도 통생골이나 뒤에 통새
골로 변했다.

통샘(桶井) : 통새골 앞들에 있는 우물. 지금은 메워져서 작은 우물이 되었으나
옛날에는 대단히 큰 우물이었다.

형제봉(兄弟蜂) : 통새골 남동쪽에 두 개의 봉우리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형제봉이라 부르고 있다.

앞구레 : 통새골 앞들. 이 들가운데 있다. 신흥리의 앞으로 연결되어 새말들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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