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공유열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
화계리 글의 상세내용 : 제목, 부서명, 등록일, 조회, 첨부파일,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목 화계리
부서명 동면 등록일 2015-11-30 조회 1170
첨부
 
목천군 일동면 지역으로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반계리, 화산리, 능암리
일부가 병합되어 화산리의 화자와 반계리의 계자를 따서 화계리하고 동면에 편입
되었다.

노제 : 번개에서 지내는데 정월 십사일 저녁 열두시에 지내는데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으로 유사, 축관, 불대쟁이 세 사람이 지낸다. 비용은 부락 재
정에서 쓰고 돼지머리 삼색실과를 놓으며 예부터 지내왔다.
중간에 지내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부락에 불상사가 자주 생겨 다시 지내
게 되었다고 한다.

반개 : 반계→반계리. 냉천→찬우물 이라고도 하며 화계리에서 큰 마을 가운데
찬 우물이 있으므로 찬우물 또는 냉천이라 하였다.
우암 송시열이 반계 이윤(磻溪伊尹)의 뜻을 따서 이곳에 사는 윤씨를 위
하여 반계로 고쳐 주었다 한다.

버들개 : 유천, 유포라고도 하며 화산리와 광덕리에 걸쳐 있는 마을.
앞 냇가에 버들이 많이 있었다.

뒷골 : 번개 뒤에 있는 골. 바위에 목포를 이루고 있는데 그 옆에 글을 새겼다.

동덕이 : 동덕리라고도 하며 동덕봉 북쪽기슭에 있는 마을.

광터골고개 : 감절에서 병천면 광터골로 넘어가는 고개.

곰바위 : 감절 옆에 있는 바위. 모양이 곰이 엎드린 것 같이 생겼다.

감절 : 능암이라고 하는데 화산 북쪽에 있는데 옛날에 감절이란 절이 있었다하며
마을 옆에 곰바위가 있으므로 웅암리라 하다가 능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전설 : 이곳에 큰 둥구나무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의 꾀임으로 부락민이 이나무를
베고 우연히 동네가 망했다고 한다.

가장골 : 가장리라고 하며 화산 위쪽에 있는데 직장 이기장(李箕章)이 이곳에 살
면서 이씨가 잘 자라라는 뜻에서 가장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강당터 : 사교당터, 서재터, 화산에 있던 강당터 효종 때 학자 이극태(李克泰)가
사교당을 세우고 후진들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화재로 인하여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 터만 남아있다.

목천 16의사 충의비 : 번개 입구 국도변에 세워져 있는데 1728년 영조 4년에 창
의하여 의병을 일으켜 위병사 안후기를 목베고 반란군을 격퇴시킨 공으로
양무원 중공신이 되었는데 학술원 원로회원인 최호진(崔虎鎭)박사가 건립
위원장이 되어 비를 세웠다.

화산 : 화산리 아래버들개 하유천 하유동이라고도 하는데 버개들 아래쪽에 있는
마을. 뒷산의 모양이 꽃같이 생겼다고 한다.

장자터 : 윗골에 있는 부자 터. 영조 무신년(1728) 난을 일으켰던 안후기가 살았
는데 아직도 그릇 조각이 남아 있다고 하며 그의 선조 무덤에 망수석이
쓰러져 있다 한다.

윤선생추모비 : 화산가운데 있는 시암 윤행의(尹行義) 추모비가 30년전에 세워졌
다.

동면 면사무소터 : 동면 면사무소가 번개 입구에 있다가 옮겨갔다.

솟대배기 : 솟대배기라고 하는 지명이 있는데 언제 솟대를 세웠었는지 알수가 없
다.

목록

만족도조사
만족도 조사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담당부서 :  
총무팀
담당자 :  
정다솔
연락처 :  
041-521-4806
최종수정일 :
2019-07-1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