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관성리 | ||||
팀명 | 병천면 | 등록일 | 2015-11-30 | 조회 | 2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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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천군 근동면 지역으로 1895년 지방행정 편제때 갈전면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
역 통폐합으로 명성리, 의동, 냉정동, 의관동을 병합하여 의관동의 관자와 명성 리의 성자를 따서 관성리라하여 천안군 갈전면 관성리가 되었다. 1942년 갈전면이 병천면으로 되면서 병천면 관성리가 되었다. 1963년 군면이 천 원군으로 개칭되므로 천원군 병천면 관성리가 되었다가 다시 환원되었다. 북달안 : 이곳에 예전에 군사가 많이 주둔하였는데 그당시 이곳에 북을 매달고 북을 쳤다고 한다. 김유신 장군이 쳤다고도 하고 백제 군사가 쳤다고도 한다. 만뢰산 : 관성리 뒷산 줄기로 상봉인데 전쟁에 쓰던 뢰를 만개나 쌓아 두었으므 로 만뢰산이라 한다고도 하고, 만안이 피할 곳이라 하여 만인산이라고 하 기도 한다. 전설 : 만뢰산에 우물을 파도 물이 나지 않아서 삼십일 기도를 드리는데 그때 전 라도 백만장자가 피난하러 가솔을 데리고 남부여대 하여 이곳에 찾아 왔 는데 이때 상서로운 구름이 서쪽으로부터 와서 비를 내리고 판 우물에 물 이 솟아 올랐으며 장자가 가지고 온 재물과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이곳의 난민들은 덕을 가지고 온 장자를 축하드리기 위하여 북을 치고 기 뻐하였다고 한다. 이때 성서로운 구름이 서쪽으로 부터 왔다고 하여 서 운산이라 한다고 하고 그전에는 물을 진천 수문골에서 퍼다 먹었다고 한 다. 사자골 : 냉정리(冷井里), 찬샘 골이라고 하는데 독가말 동북쪽 위에 있는 마을 이며 뒷산이 웅장하고 찬우물이 있어서 약물로 쓰고 그 위에 안사자 골이 있는데 그전에는 인가가 살았으나 현재는 없어졌고 대원군 시절 병인교란 때 이곳에서 천주교인 다수와 불란서 신부 페롱권신부, 칼레강신부, 리멀 이신부가 은신하고 있던 곳이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의병 다수가 이곳 에 숨어 살기도 했다고 전한다. 왜펀덕 : 왜병들이 이곳에 와서 의병들을 총으로 많이 죽였으므로 왜펀덕이라고 한다. 바타니고개 : 사자골에서 동면 바타니로 넘어가는 고개. 반고개 : 밤고개라고도 하며 명성골에서 동면 광덕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 고개에 밤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명성골(明星) : 명성리라고도 불렀으며 관성리에서 가장 크고 구억말 동쪽에 있 다. 매봉 : 응봉이라고 하는데 명성골 서남쪽에 있는 산. 모양이매같이 무섭게 생겼다 한다. 훈련골 : 백제때 이곳에서 병사들이 훈련하였다고 하는데 동면과 경계지점에 있 는 골이다. 독가말 : 의동(衣洞). 명성골 북쪽에 있는 마을. 그릇이 있었으며 점말이라는 곳이 있고 옹기 가마터가 밭에 있었다. 안터 : 독가말 안쪽에 있는데 조선조 영조대왕이 스승이었던 곽시징(郭始徵)이 살았고 그의 묘가 이곳에 있다. 행암고개 : 관성리에서 동면 행암리로 넘어가는 고개. 옹갓골 : 의관동(衣冠洞)이라고도 하는데 관성지구이며 옛날 옥이 있었다 한다. 노적봉 : 명성골 입구에 있는 산. 산 모양이 노적가리 같이 생겼다. 장자펀덕 : 옛날에 장자 즉 큰 부자가 살았다. 정자 : 독가말에 있는데 권농정이라 하며 이 부락민 한동수씨의 유언에 의하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한상운(韓相雲)형 제가 건립하여 휴식처가 되고 있 다. 망해암 : 이곳에서 내려다 보면 중국 산동성이 보이고 일본 가지도 보인다는 말 이 전해오면 임진왜란때 동면 하유동에 살던 16세 소년 이응이 뛰어난 지 략으로 피난민을 모아 설득하여 돌과 활로 왜군과 수일간 싸워 격퇴시킨 곳이다. 선바위 : 바위가 서 있는데 옷갖골 뒤에 있다. 절골 : 절이 있었는데 돌절구가 남아 있다. 고로골 : 굴이 있는데 10여명이 들어갈 수 있다. 불무골 : 철을 녹이기 위하여 불무하던 곳. 기와탄말 : 기와조각이 많이 나오고 있다. 기름챙이골 : 명성골에 있는데 예전에 공인(工人)들이 집단으로 살던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