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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덕리
팀명 광덕면 등록일 2015-11-30 조회 3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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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군 원일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수철리, 대거리, 내산
리, 곡도리, 안심대, 목과동, 금단리, 어인동, 만북동이 병합하여 광덕산의 이름
을 따서 광덕리라 하고 광덕면에 편입되었다.

광덕사 : 광덕산에 밑에 있는 절.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서역천
국에 가서 문부 보살을 뵙고 석가의 진신사리를 얻어가지고 와 창건하였
다. 하며 고려 28대 충혜왕 5년(1314)에 세법 중수하였다고하고, 이조 7
대 세조 10년(1457) 세조가 온양온천에 거동할 때 광덕사와 개천사에 와
서 위전을 바치고 부역을 면제하는 교지를 주었는데 제 14대 전조 25년
(1592) 임진왜란때 천불전만 남고 전소된 것을 3년만에 재건하였다.
근래 다시 중창 불사를 하였는데 광덕사 고려사경이 보물 제 39호로 지정
되었고, 광덕사 부도가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삼층석탑이 제 120호
로 대웅전이 문화재 자료 제246호로 지정되었다.

산신제 : 광덕리 1구에서 지내는데 정월 초이틀 날 지내며 옛날에는 정월 초하
루 자기 집 차례보다 먼저 지냈다.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으로 제
관 축관이 지내고 각호의 소지를 올려주는데 옛날에는 전 주민의 소지를
올려주었다. 삼색실과와 돼지머리, 감주, 탕, 메를 제물로 놓고 먼동이
틀 때 지낸다. 제관들은 목욕재계하고 담배와 술을 당일 금하며 제를 지
낸 음식은 나누어 먹는다.

탑제 : 이 부락에서 산신제 지낸 후 삼색실과와 메밀 팥떡을 제물로 놓고 산신제
를 지낸 제관들이 지낸다.

곰푸리(態草洞) : 웅초동이라고도 하며 광덕사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예전에 곰이 풀을 뜯어 먹었다 한다.

곡두(曲頭)재 : 안심터에서 공주군 정안면 산성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 길이 구부러 졌다.

검단이 : 검단리, 검단(儉丹), 댓거리.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금잔패벽형의 명당이 있다 한다.

갈티고개(葛峙) : 광덕리에서 공주군 유구면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

북실바위 : 광덕리에서 아산군 송악면 북실로 넘어가는 고개.

부엉바위 : 부엉골 왼쪽 산에 있는 바위.
이 바위에서 부엉이가 가끔 운다고 한다.

부원(富源)골 : 만복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

만복골 : 만복동. 만복(萬福) 노루목 동쪽에 있는 마을. 만복사가 있었다.

만복사터(萬福寺) : 만복에 있는 만복사터. 신라 43대 흥덕왕 7년(832) 진산법사
가 광덕사와 함께 이 절을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한
다.

부용(芙蓉)묘 : 봉조하 김이양 대감 묘 왼쪽 산등성이에 있는 이조 여류시인 성
천 기생 김부용의 무덤. 김이양의 소실이며 초당마마라 불리었고 유언
에 의하여 그의 묘 부근에 묻혔다. 오강루 문집 등에 한시 350여수를 남
겼다. 이조 3대 여류 시인중 한명. 운초 김부용 추모회와 문인협회 그리
고 천안향토사연구소에서 매년 4월말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등어치미 : 음달말 뒤에 있는 골짜기.

대거리(垈巨里) : 광덕리에서 가장 큰 마을. 대나무가 많았으며 철일을 하던 대
장간이 있었다. 이 부락에 의병들이 많이 있어 일본군들이 의병을 소탕
하기 위하여 온 동네에 불을 놓아 49여호가 불에 탔다고 한다.

산신제 : 대거리에서 음력 정월 초이틀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으로 제관, 축
관, 보조인이 낮 정오에 삼색실과와 돼지머리 메, 떡을 제물로 놓고 지내
며 비용은 부락 비용으로 하고 선택된 사람은 당일에 담배 술을 금하고
제관집에는 황토를 펴 놓고 제를 지낸 음식은 나누어 먹으면서 부락 총
회를 연다.

장승제 : 산제를 지낸 후 오후 황토를 피우고 금줄을 치고 북어를 장승에 매달아
놓고 삼색실과와 떡을 제물로 놓고 지낸다.

탑제 : 광덕리 1구에서 지내는 탑제와 비슷하다.

닥근이 : 해수(海水), 수철리(水鐵里), 곰푸리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당나무와 무쇠가 나고 해사암이 있었다고 한다.

늦은 목 : 중방산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

농바위 : 노루목(獐項) : 은골 서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지형이 노루목 같이 생겼다고 한다.

안산 : 내산리, 내산(內山), 광덕사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김이양묘(金履陽) : 광덕사 위에 있는 광덕출신의 순조때 봉조하(奉朝賀), 호조
판서 김이양대감 묘.

불당골 : 광덕리에 있는 불당이 있던 골짜기.

상사(上寺) : 광덕사가 있는 마을.

상사니골 : 노루목 뒤에 있는 골짜기.

쇠머리펀덕 : 장군바위 북쪽에 있는 펀덕.

안심터 : 안심대, 안대(安垈), 검단이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골짜기가 아늑하여 아무리 어지러운 세상이라도 안심하고 살 터라고 한
다.

양달말 : 부엉바위 양달쪽에 있는 마을.

은골(隱谷) : 어인동(於仁洞) 부엉바위 북서쪽 끝 골짜기에 있는 마을.

유장군묘(柳將軍墓) : 광덕사 서쪽에 있는 삼사좌윤(三司左尹) 유장(柳莊)의 묘.
장군대좌의 명당이라고 한다. 그의 비가 광덕사입구 위쪽에 있다.

음담말 : 부엉바위 음달쪽에 있는 마을.

해사동(海寺洞) : 곰푸리 북쪽에 있는 마을 해사암(海寺庵)이 있었다.

이마장 : 장군바위 서쪽에 있는 골짜기 깊고 아늑하여서 고종 31년(1894) 동학난
때 2만명이 이곳에서 피난하였다 한다.

장승거리 : 양달말 위에 있는 길. 석장승 1쌍이 있다.

줄리골 : 장승거리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

중방안 : 부원 왼쪽 뒤에 있는 골짜기.

산신제 : 광덕리 4구에서도 제를 지내는데 정월 초순 길일을 택하여 지내고 생기
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으로 제관과 축관을 선정하여 새벽에 지내는데 돼
지머리 삼색실과와 술을 제물로 놓고 지내며 제관은 전날부터 담배를 금
하고 목욕재개하고 지낸다. 제를 지낼 때 각호의 소지를 올려 주고 제를
지낸 음식은 나누어 먹는다.

남사당골 : 예전에 남사당 놀이를 하는 남사당패가 살았다한다.

장군바위 : 아산군과 경계에 있는데 모양이 장군같이 생겼다고 한다.

호도전래비 : 광덕사 입구에 있는데 민병달 선생이 비문을 짓고 건립위원회에서
세웠다.

의병매장터 : 일병들이 의병을 붙잡아 생매장 하였는데 일인들이 떠난 후 부락민
들이 속히 파내어 한사람은 살았다고 한다. 일인들이 이것을 알고 동네
에 저녁에 불을 놓았는데 온 동네 40여호가 불타 버렸고 지금도 부락내에
서 쌀탄재가 나온다고 한다.

모가나무골 : 의병들이 이곳에서 일병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하며 지금도 의병 무
덤이 초라하게 있다고 한다.

점촌 : 마을이 있었는데 불이 자주나 폐동이 되었다고 한다.

장고개 : 아산군 온양장 보러 넘어다니던 고개이다.

허리빗날 : (전설) 중국의 이여송이가 임진왜란 때 이곳에 와서 보고 큰 인물이
나와 앞으로 중국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 하며 인물이 못나오게 하려면 산
혈을 잘라야 한다고 했는데 이곳의 산허리를 잘랐다 하여 허리빗날이라고
전해온다.

장터골 : 옛날에 이곳에서 장이 섰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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