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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산원리
팀명 광덕면 등록일 2015-11-30 조회 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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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군 원일면 지역으로 조선조에 보산원이었으므로 보산원이라 하였는데 1914
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성주리, 개천동, 세곡리, 양지리, 능산리, 보산원, 광
티, 원이면의 용정리가 병합하여 보산원이라 하고 광덕면에 편입되었다.

산신제 : 보산원에서 정월 초승 택일하여 지내며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으
로 당주, 제관, 축관 세명이 지내는데 돼지머리, 떡 3되 3홉, 감주, 삼색
실과를 제물로 놓고 저녁 10시쯤 지내고 각호의 소지를 올려준다.
부락민중 떡을 해서 자기 집에서 그 시간에 각자 제를 지내는 사람도 있
다. 선택된 제관들은 술 담배 비린 것을 금하고, 전에는 부락민의 출타
를 금했는데 현재는 완화되었다. 제를 지낸음식은 부락민중 최고령자에
게 가지고 가서 대접을 하고 그 이튿날 모여 산신 계를 하고 부락 동계도
한다.

평풍바위 : 남생이 바위골 옆 골짜기에 있는 바위가 병풍처럼 생겼다.

평풍박골 : 평풍바위가 있는 골짜기.

호주박골 : 뒷골 왼쪽에 있는 골짜기.

화장골 : 사당박골 맞은편에 있는 골짜기.

큰집주골 : 집 주골의 큰 골짜기, 팥떡판관 묘가 있다.

팥떡판관묘 : 큰 집 주골에 있는 사헌부 감찰 우덕화(禹德和)의 묘.
조선조 16대 인조2년(1624년)에 이괄의 난을 피하여 2월 12일에 천안에서
자고 닭울기전에 황망히 떠나서 공주로 가는데 지장리의 왕승리를 지날
때 우덕화가 팥떡을 대접하고 , 금강을 건널 때 배가 없어서 인조를 업
어 강을 건너주었다. 그 공으로 판관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통미 : 안말 앞에 외따로 있는 산.

통미들 : 통미 밑에 있는 들.

안보산원 : 내보산원, 내보, 안말, 청산리(靑山里)라고도 하는데 보산원 안골짜
기에 있는 마을. 보산군(寶山郡) 양무공(襄武公) 오자경(吳子慶)의 묘
가 있다.

양무공묘 : 양지말에 있는 세조때 보산군 양무공 오자경의 사당.

양지(陽地)말 : 보산원 북쪽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
오자경 사당이 있는 곳이다.

옥천암 : 옥천바위(玉川岩), 개창골 북쪽에 있는 바위.

왕바위 : 양지말 남쪽 논 가운데 있는 큰 바위.

도적놈수레길 : 용가리, 용경(龍耕), 사기소 뒷산에 있는 길.
두 갈레의 길이 산 밑에서 꼭대기로 치올라 갔는데 무학리의 쌍령도적 안
수가 도적질한 물품을 수레에 싣고 성 안으로 오르내리던 자국이라 하며
또는 용이 산을 갈고 올라간 것이라 한다.

용상골 : 안 보산원에 있는 골짜기. 비룡상천의 명당이 있다고 전하여 온다.

장승거리 : 아래 보산원에 있는 길. 돌로 만든 장승 1쌍이 있다.

성주리(聖住里) : 사기소 북쪽에 있는 마을. 성주암이 있다고 한다.

새터(新垈) : 보산원 동북쪽에 새로 된 마을.

사기소(砂器所) : 용경, 용가리, 사기실, 사구시, 용경리라고 도하는 마을, 보산
원 동쪽에 있는 마을. 조선조에 사기소가 있었고 용가리가 있다.

쇳대배기 : 안말 어귀에 있는 밭. 쇳대가 있었다고 전하여 온다.

사담박골 : 위 동박골 옆에 있는 골짜기.

(전설) : 보산원에 한진사가 낙향하여 살았는데 그의 딸이 어여쁘기가 그지없었
다. 한 마을에 사는 조진사 아들과 서로 사모하게 되어 서로가 좋아하였
는데 조도령에게 한양에서 군문에 들어오라는 전갈이 전달되어 가지 않으
려 하였으나 아니갈 수가 없어 상경하게 되었다. 이때 조진사 아들이 한
진사 딸에게 3년 기다리라고 하고 상경 한 후 돌아오지 않자 한진사 딸이
매일 이 산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며 조도령을 기다리다가 죽었다고 한다.

쉴바위 : 성주리 큰 길가에 있는 바위. 넓고 커서 멍석만 한데 조선조 세조10년
(1465)에 세조가 등창을 고치기 위하여 속리산을 거쳐 온양 온천에 갈때
전의에서 자고 3월 1일에 온양으로 가는길에 이 바위에서 쉬었다.
지금은 장마로 밑이 패여서 바위가 냇가에 비스듬히 내려 앉았다.

벼락바위 : 옥천 이 바위 뒤에 있는 바위. 바위가 험한데 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보성골(寶成) : 안골 옆에 있는 골짜기.
보산군(寶山君) 오자경(吳子慶) 묘가 있다.

보산원(寶山院) : 조선조 시대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기 위해 길목에 숙박시설을
만들어 쉬고갈 수 있게 하던 원이 이곳에 있었는데 그 원의 이름이 보산
원이다. 보산은 오자경(세조때 보산군)에서 온 것 같다.

범어귀바위 : 통미들 동쪽 어귀에 있는 바위. 범이 입을 벌린것 같이 생겼다.

범어귀 : 범어귀 바위가 있는 곳의 옆 마을.

바랑골 : 굴골 아래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바랑처럼 생겼다.

바깥보산원 : 외보산원이라고도 하며 보산원 바깥쪽에 있는 마을.

바깥넓티 : 외광티(外廣峙)넓티, 바깥에 있는 마을.

등잔거리 : 벼랑위에 옆에 있는 바위. 등잔처럼 생겼다고 한다.

말등그리 : 안보산원 서쪽에 있는 벼랑. 벼랑위에 길이 있는데 말이 뒹굴었다고
한다.

뒤동박골 : 호주방골 옆에 있는 골짜기.

남생이 바위골 : 사담박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남생이 바위가 있다.

귀신이보 : 귀신이들에 딸린 보, 성주들 아래.

굴골 : 용가래날 옆의 골짜기. 굴이 있었다고 한다.

곱쟁이텃골 : 안보산원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욕심많은 부자가 살았는데 빚을 주
면 곱쟁이로 이자를 받았다고 전하여 온다.

거문보 : 송저릿보 위쪽에 있는 보.

개천사터(開天寺) : 개천사가 있었던 터. 신라 42대 흥덕왕 7년(832)에 진산대사
(珍山大師)가 광덕사와 함께 세웠던 절이라고 한다. 조선조 7대 세조가
온양온천에 거동할 때 광덕사와 개천사에 와서 위전을 쳤는데 빈대가 많
아 폐사되었다고 전해 온다.

개창골 : 개천리 개천(開天) 양지말 북쪽에 있는 마을. 개천사가 있었던 골이다.

가마산 : 신대 동쪽에 있는 산. 숯가마와 철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가는골 : 세곡리. 세곡(細谷) 개창골 서남쪽 곧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

장승제(노제) :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장승이 바깥보산원에 있는데 돌로 만
들어져 있으며 음력 정월 열사흘 저녁 일곱시경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
람으로 당주, 제관, 축관 세 사람이 장승제를 올린다. 참석자는 제한이
없으며 떡과 삼색실과, 포, 삼랑, 나물류를 놓고 지내며 지내는날 길을
청소하고 황토를 펴며 금줄을 맨다. 당주집도 금줄을 매고 당일은 부락
민이 비린 것을 금식한다. 제를 지낸 음식은 나누어 먹으며 동계(洞契)
를 한다. 이 부락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부락의 길이 사오방 난길이라 제
를 지내게 된 것 같다고 한다.

개천사 전설 : 온양맹씨들이 개천사에 와서 보니 이곳의 터가 좋은지라 토끼울에
서 남사당들이 놀이를 하는데 볼만한 구경거리가 된다고 절 사람들을 구
경보내고 난 후, 절에 불을 질러 태우고 그후에 자기네 조상의 묘를 썼는
데 맹씨들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돈들매기 : 지대가 약간 높아 돈들매기라 한다.

옥녀봉 : 옥녀봉이 있는데 옥녀 탄금대의 형이라 한다.

중방골 : 골의 턱이 문중방턱같이 생겼다.

오직이 고개 : 공주군 정안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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