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용정리 | ||||
팀명 | 풍세면 | 등록일 | 2015-11-30 | 조회 | 3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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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군 원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대정리,
용두리, 상도종, 하동종이 병합하여 용두리와 용장와 대정리의 정자를 따서 용정리라 하고 풍세면에 편입되었다. 산신제 : 도종(道宗). 돈마루에서 음력 구월 십오일 생기복덕 을 보아 닫는 사람이 제관이 되어 소머리, 북어, 김, 다시마, 삼색실과, 떡 3되 3홉, 메, 술(조리술)을 제물로 놓고 저녁 일곱시경 제사를 지낸다. 제관은 담배를 삼일 끊어야 하고 참 석자는 네명인데 제관, 축관, 짐꾼, 주당(음식장만하고 차리 는 사람)이며 부락 무고의 소지를 올리고 당일 부락민은 비린 음식을 먹지 않으며 제지낸 음식은 다음날 모여서 먹는다. 한우물 대정리(大井里) : 용머리 남서쪽 마을 앞에 있는 큰 우물. (전설) : 물이 차고 샘이 크며 이 물 하나로 온동네 사람들이 먹고 살아왔는데 샘위에 큰 팽나무가 있어 단오날이면 그네 를 매고 뛰는게 젊은 사람들의 여름 놀이였다. 그네를 뛰다가 처녀가 그네에서 떨어져 빠져 죽으므로 우물을 폐하고 먹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자리에 남아있다. 칼바위 : 돈마루 뒤에 있는 바위. 바위 모양이 칼처럼 생겼다. 윗돈마루(上道宗) : 돈마루 위쪽에 있는 마을. 하도종(下道宗) : 아래 돈마루. 취덕정(就德亭) : 회앙(희암)터(希庵), 돈마루 뒤 골자기에 있는 희암. 현덕승(玄德升)의 집 터가 되는데 용촌 뒤에는 희암대(希庵臺)가 있다. 이것은 선조때 학자 현덕승이 용적정(龍德亭)을 짓고 후진들을 교육하 던 곳이라 한다. 용추 : 용두뿔 둠벙 용머리 뒤 산부리에 있는 소(沼) 예전에 용총이 나왔다 한 다. 용머리 : 용두리, 용두(龍頭), 용정리에서 둘째로 큰 마을. 마을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솔모랭이 : 송우리(松隅) 한우물 서북쪽에 있는 마을. 소나무가 무성한 모퉁이가 있다. 도리미 : 용머리 북쪽 들 가운데 외따로 있는 작은 산. 돈마루(道宗) : 용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지형이 돈대로 되었다. 희암(希庵) 현덕승(玄德升)이 이곳에서 성장하였다. 마장재 : 아래 돈마루 앞에 있는 마당처럼 생겼다. 매봉재 : 응봉. 돈마루 앞에 있는 산. 모리질 : 돈마루 북쪽에 있는 낮은 산. 산형이 재산을 몰고 들어가는 형의 길이 라 한다. 삼거리들 : 용머리 북쪽에 있는 큰 들. 세갈래 길이 있다. 산신제 : 위 돈마루에서 지내는데 정월 칠일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사람 세명이 지내는데 제관, 축관, 주당이며, 제물은 떡 3되 3홉, 조라술 (당일 만든 술), 김, 메, 돼지고기이고 참가자는 선정된 후부터 제를 지낼 때 까지 술과 담배를 금하고 탈 없이 지내야 한다. 비용은 산제답을 지은 도지로 충당하고 해가 넘어갈 무렵 지내며 각 호의 소지를 올려주고 제를 지낸 음식은 모여서 같이 먹는다. 왜재펀덕 : 기관을 생산하기 위하여 굽던 터가 있다. 연주현씨 사당(延州玄氏) : 연주 현씨, 시조 담윤(覃胤)의 사당이 돈마루 입구 에 있다. 방죽모틍이 : 방죽이 있어 방죽 모틍이가 된다. 늘도가밭 : 늘을 만들어 팔던 곳이며 디딜방아가 있었다. 점골 : 질그릇 굽던 그릇점이 있었던 곳이다. 봉수대 골 : 태화산 봉수대가 있던 아래 골. 방아다리 : 아래 한우물인데 물레 방아가 있었다. 영성골 고개 : 대정리에서 풍세로 가는 고개. 당골 : 서낭당이 있었다 하며 기와조각이 나온다. 독쟁이 : 독을 만드는 공인들이 살던 곳(쟁이). |